전생 이야기 03

나는 베네치아 상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열살을 못 넘기고 죽은 장남을 대신해서
내가 당신의 뒤를 이을 거상이 되길 원하셨다.

열 여섯살이 되던 해에
이웃이던 구두가게 셋째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나이 많은 연적이 나타나 나를 모함하는 바람에
나는 그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했다.

그의 칼에 내 왼쪽 눈썹와 동공이 날라갔지만
내 칼은 그의 목을 관통했다.
하지만 결투가 끝나자 사랑도 끝이 나버렸다.
내 연인은 이미 나이 많은 연적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 나이엔 자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차마 옆에서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뱃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베네치아를 떠나고 싶었다.

세계를 돌며 여러 나라의 상인들을 만나고
여러 여자들을 사랑하고 여러 풍토병을 겪었다.
십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내 칼을 받고 쓰러지는 연적의 모습과
그 뒤에 서있던 연인의 모습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 왼쪽 눈 앞에 뚜렷하게 그려진다.

베네치아의 고향집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식구들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배 타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결국 군입대를 선택했다.

몇 년 뒤 나는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냉혈한 해군 소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애꾸눈의 매디치라고 불렀다.

자유파든 반역자든 해적이든 상관 없었다.
진급이나 애국심, 정치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내게 필요한 것은 내 칼을 받을 또 다른 연적들 뿐.
내 칼에 피가 묻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사십이세가 되던 날 아침
바다 바람을 따라 역한 피냄새가 막사에 전해졌다.
나는 그 날이 내 생의 마지막 날임을 깨달았다.

반역군들은 이미 해안선을 따라 요새에 잠입했고
기지 여기저기에서 큰 불꽃이 타올랐다.

연기와 비명소리, 피비린내가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는 닥치는대로 베고 자르고 찌르며 소리 질렀다,
내가 바로 애꾸눈의 매디치다.

정오의 태양이 떠오를 때
나는 뜨거운 칼날이 내 목에 파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칼자루를 쥔 청년의 얼굴이 낯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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