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이야기 01

나는 파미르 고원에서 양치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몇 차례 병치레를 하는 바람에 다리를 절뚝거려서
아버지의 양치기 일을 물려받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손재주가 있어 근처 도시로 나가
큰아버지 밑에서 마차 수리 일을 배웠다.

매일 밤 고향에 두고온 애인을 그리워했지만
어느 날엔가 이국땅에서 흘러들어온 집시의 춤에 반해버려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주색잡기에 빠져버렸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내 곁에 남은 건 고향의 애인도 이국땅의 집시도 아니였고
낡은 연장통과 당나귀 한 마리 뿐이였다.

다른 도시로 도망치듯 빠져나와
시장에서 잡일을 하며
틈틈히 가구나 농기구를 수리해주면서 돈을 모았다.

몇 년 뒤 나는 가구를 만드는 공방을 차리고
양 열 마리, 말 한 필에 첫번째 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현명한 여인이였다.

두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전쟁은 시작되었다.
나는 다리를 절기 때문에 군대에 징집되지는 않았지만
피난길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가족들 모두를 잃고 말았다.
이번엔 낡은 연장통과 당나귀도 내 곁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나는 처음 떠나올 때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옛 애인은 전쟁통에 사망했고
그녀의 딸이 고아가 되어 버려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데려다가 십 년을 키웠고
성인이 되는 날 그녀를 두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천성이 순하고 온화한 여인이였다.
우리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가난하지만 만족하며 살았다.

두번째 딸아이가 지주의 세번째 부인이 되던 날 밤
나는 결혼식 음식으로 가져온 양고기를 먹다가
그만 목에 걸려 질박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새신부가 된 둘째 아이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을 감을 때 마음은 편안했다.
그날 밤 파미르 고원의 바람은 차갑지만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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