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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4 벗님의 의역 3

벗님의 의역

   모국어를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구사하는 능력은 예술적 소양의 중요한 밑바탕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음악에 있어 곡명이나 가사는 강력하고 직선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에 모국어의 풍부한 표현력을 가꾸는 것이야말로 창작자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앨범은 국외로 보내기도 해야하고 또 국적불명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싶어서 부득이하게 앨범명이나 곡명, 부클릿을 영문 표기했다.

   그런 이유로 원래 한글 곡명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앨범에 수록한 셈인데, 오랜 벗님인 토튜타 정박사가 재치 있는 의역을 도와주었다. 정박사의 신실한 도움이 아니였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였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Track 01. Time For Longsleeves
   원래 제목은 '반팔 입긴 추운 날씨'였다.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시기, 아침 저녁 쌀쌀해져서 반팔만 입고 출근하기엔 좀 추운 날씨에 관한 노래였는데 '아효 그렇다고 반팔만 입고 출근하기에는 또 영~' 이 뉘앙스를 영문으로 직역하면 너무 구구절절하게 길어져서 한참 헤매고 있던 차에 정박사가 '긴팔 꺼내 입을 시기'라는 멋진 의역을 만들어주었다.

Track 02. Summer Composer
   원래 제목은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였다. 여기서 여름방학은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심지어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의 여름방학이다. 영문 표현에서는 짧은 일상의 단어 두어개만으로 '끝나가는 국민학교의 여름방학'을 표현할 수 없어서 적당한 번역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구스타프 말러가 스스로를 '여름작곡가'라 자조했던 것에서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여름작곡가'라는 곡명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즉, 이 경우에는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의 어린이와 '여름휴가 때나 간신히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어른이 겹쳐져 있다.

Track 09. TV Said It Will Rain
   원래 제목은 '오늘 비 온다던데...'였다. 비가 온다고 처음에 얘기한 사람이 누군지 불분명하고, 그 비소식을 누구에게 다시 전달하는지도 불분명하며, 그래서 우산 챙기라는 건지, 비가 와서 심난하다는 건지, 비오니까 우리 오늘 만나지 말자라는 건지 말끝을 흐리기 때문에 영문으로 번역하기 힘들었는데, 정박사가 '기상예보에서 오늘 비 온다고 했어'라는 근사한 의역을 만들어주었다. 의뭉스러운 원래 제목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이지만 참신한 느낌이 들어서 흡족했다.

   정박사의 신실한 의역은 앨범 부클릿 마지막 장에 실린 작업후기에서도 유효했는데, '출근작곡가'를 'Morning Composer'로 의역한 부분은 특히 친절하기까지 하다. 한글 작업후기와 의역한 영문 작업후기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0대의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었다. In my 20's, I worked as a computer programmer for living.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과로하기 일쑤였지만 출근 전 30분 동안 작곡과 시퀸싱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I frequently worked overtime not only on weekdays, but on weekends too. But I would never miss the 30-minute composing/sequencing time of my own every morning before I went to work.

   구스타프 말러는 여름 휴가철에만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며 스스로를 '여름작곡가'라 불렀는데 내 경우에는 '출근작곡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Gustav Mahler called himself a 'summer composer' because he can commit himself to composing only in the summer vacation. In my case, I would call myself a 'morning composer'. 

   그 시절의 작업물들을 이 앨범에 수록했다. This album contains the musical results of those days. 이 노래들은 투박하고 멋이 없지만 20대 시절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준, 항우울제보다 효과적인 처방전이였고, 월급봉투보다 의미 있는 진통제였다. They might sound a little clumsy, or lacking refinement. But to me, these songs were stronger-than-Prozac prescription which helped me to survive my 20's, and painkillers which gave me more meaning than my paychecks.

   이 앨범을 통해 당신의 고단했거나 찬란했을 20대 시절을 잠시 떠올려보길 기대한다. Now, I humbly hope this album can remind you of your 20's days which probably were tiring, or maybe sh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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