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Composer - 작업후기

   지난 2007년 겨울에 이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트를 구상했다. 가내수공업, DIY, 작가주의 같은 엄한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는데, 종합해보면 이 앨범의 컨셉트는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즉, 팀원들과 의견 조율 심지어 스케쥴 조정 같은 과정도 필요없고, 제작사의 요구사항 심지어 기대사항도 무시할 수 있는 상태이길 희망했다.

   그래서 작곡부터 작사, 편곡, 연주, 믹싱, 마스터링, 디자인까지 혼자서 완결하고 싶었고,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지겠지만, 뭐 좀 그러면 또 어때 하는 근본 없는 낙천주의적 성격이 이 모든 작업 전반에 깔려있다.

   손 가는 대로, 맘 내키는 대로 작업하겠다는 컨셉트를 정하고 나서 1998년부터 작업한 데모시디들(←)을 쭈욱 늘어놓고 선곡 작업에 들어갔다.




   60여곡에서 20여곡을 추려낸 다음에 데모 트랙들을 공개하고, 불특정 소수의 리스너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일면식 없는 시무라 상이나 미스터 덱스터부터 가까운 동료, 후배들까지 모두 정성껏 의견을 피력해주었는데, 의견이 너무 갈리는 바람에 선곡하기 더욱 혼란스러워져서 결국엔 내 맘대로 총 14곡을 골라냈다. 그 때가 아마 2009월 1월이였지.
 
   그 뒤로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5월에 아이가 태어나서 육아에 매진하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믹싱을 하긴 해야겠는데 음악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였고, 그렇다고 이제사 외부에 믹싱을 맡기자니 반칙하는 것 같아서 두달 정도를 더 놀았다. 

   그러다 7월 정도부터 육아생활이 좀 안정되면서 밤에 아이를 재워놓고 집 앞 공원을 어슬렁거리면서 믹싱 작업을 시작했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믹싱된 곡들을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모니터링하고, 수정할 것들을 노트에 메모(→)했다가 작업실에 가서 수정하고, 다음 날 밤 다시 아이를 재워놓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며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수록곡들이 하나 같이 다 지루했기 때문에 무척 졸리고 고단한 작업이였다. 집 앞에 어슬렁거릴 수 있는 공원이라도 없었다면 아마 믹싱 단계에서 앨범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믹싱과 동시에 부클릿 디자인 작업에 착수했다. 예전에 찍어둔 사진에서도 몇몇 이미지를 가져왔고, 부족한 부분이나 강조하고 싶은 것들은 손으로 그렸다. 타블렛 같은 장비는 없기도 하고 쓰지도 못하니, 그저 스케치북에 연필로 벅벅 그리고(←) 그걸 스캔해서 컴퓨터로 수정하는 단순한 방법을 취했다.

   저쪽 세계에 살면서 동시에 이쪽 세계에도 걸쳐있는, 경계가 모호한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인물화를 시도했는데 과욕임을 바로 눈치 채고 동물화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보컬곡 없는 연주곡 앨범이다보니 부클릿에 딱히 적어넣을 것이 없어서 각 트랙에 대한 해설이라도 적어볼까 하다 빈약한 어휘력 때문에 바로 포기하고 그 대신에 사용한 악기들을 적어두었다.


   이런 거칠고 투박한 공정을 거쳐서 앨범(→)이 발매되었다. 조악하고 한계가 명확한 앨범이지만, 어지럽고 더러운 방을 하루 날 잡고 대청소했을 때 기분과 비슷한 감정이 든다.

   누구든 이 앨범을 듣고, 앨범이 좋고 나쁨을 떠나 디제이매직쿨제이란 작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이는 몇이나 먹었는지, 어렸을 때 뭔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얼핏 짐작이 안된다면  이번 작전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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